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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버자유여행/해외여행

이태리 - 로마 [5th Day] -- 쟈니콜로 언덕, 가리발디 동상, 아쿠아파올라, 판크라치오

4월 24일(일):

 

 

아르헨티나 광장에서 택시로 가리발디 장군 동상이 있는

쟈니콜로 언덕에 올라갔다.

 

가리발디 장군은 자신을 위한 권력이나 부귀영화에는 관심 없는

정직한 인격으로 모두에게 지도자로서의 뛰어난 자질을 인정받았다.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 불굴의 용기와 결단력은 이탈리아인들에게

민족성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일깨워 애국심을 불러 일으키게 된다.

 

이탈리아를 외세의 지배에서 벗어나게 하려는 강한 결의로

리소르지멘토운동을 활발하게 펼치던 그는 비록 당시엔 이탈리아

내전이 많았지만 언젠가는 단일국가로 통일될 것이라는 강한 신념이

있었다.  가리발디 장군은 많은 희생의 댓가로 남부 이탈리아를 통일한다. 

 

그러나 이탈리아가 남북으로 분단돼 대치 상태가 되자

1861년 국왕 비토리오 엠마누엘(Vittorio Emanuele) 2세를 찾아가

남부 이탈리아를 자진 헌납함으로써 이탈리아를 통일로 이끌어

건국의 아버지로 추앙 받는 신화적 영웅이다.

 

이 언덕은 1849년 프랑스가 교황 중심의 정부를 복귀시키기 위해

군대를 이끌고 쳐들어오자 가리발디 장군의 지휘아래 치열한 방어전을 

벌인끝에 프랑스군을 물리친 유서 깊은 장소이다. 

 

말등위에서 내려다 보는 모습의 가리발디 장군 동상이 시내 전경이 한눈에 펼쳐지는언덕위에 세워짐은 너무도 당연하고 적절한 후세 사람들의 선택 이었던것 같다.

  

아직도 엠마누엘 2세 보다는 가리발디의 인기(?)가 더 높다는 이야기를 현지민에게서 들었다.

 

 

리소르지멘토운동:  Risorgimento:국가통일운동

 

 

 

쟈니콜로 언덕 광장에서 내려다 보니 바티칸 성당도 엠마누엘 2세 기념관도 친숙하게 눈에 들어온다.

 

언덕을 내려오는 중간쯤에 Fontana Acqua Paola 가 있었다.

트라스테베레 지역의 물 공급 개선을 위하여 옛 로마의 수로를 재활성화 시키면서 이 수로의 끝나는 지점에

아치형으로 세운 큰 분수이다분수 부근은 커브길에 자동차 통행도 빈번해서 사진 찍기가 용이 한편은 아니었다.

정면을 찍기 의해서 뒤로 한껏 물러나도 내 카메라로는 전경을 잡을수가 없어서 윗부분과 아래 부분을 따로

찍어야 했다. ㅠㅠ

 

                                    분수 윗부분                                                                        분수 아랫부분

 

 

 

외세의 침입을 막기 위하여 티베르강에서부터 시작되어 강안을 따라 쟈니콜로 언덕까지 세워놓은 긴 성벽의

서쪽 출입구를 포르타 아우렐리아 라 불렀던 것을 17세기 교황 Urban 8세 때 주변의 Pancrazio 성당의 이름을

따서 Porta San Pancrazio 라고 이름을 바꾸었단다.  현재의 Porta San Pancrazio 1854년에 다시 지어진 것이고

성벽은 붉은 벽돌로 아주 촘촘히 쌓여진 견고한 상태로 남아있었다.

 

 

 

 
 
 

 

 

Fontana Acqua Paola 분수에서 조금 언덕을 내려가니 버스 정류장이 있는데 바로 그 앞에 

Il Mausoleo Ossario (대영묘 - 납골당)가 있었다.

로마를 위하여 싸우다 죽은 남녀노소, 유/무명을 가리지 않고 장교에서 11~16세 북치던 소년까지

모든 희생자의 이름이 대리석에 새겨져 있었다. 

뒷편에는 현재 이탈리아 애국가 가사의 저자Goffredo Mameli의 묘가 자리하고 있다. 

가리발디 진영의 부관 이었던 Mameli 는 1849년 6월에 있던 전투에서 입은 상처의 후유증으로 

한달 정도 앓다가 21세의 젊은 나이에 죽은 시인이며 작가이며 애국자 였다.